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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야키의 역사

[우에노야키의 걸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분록·게이쵸의 역」에 의해 초청되어 가토 기요마사 공에 따라 귀화한, 이조 도공·존중.
그리고, 서국 다이묘 중(안)에서도 다도에 조예가 깊고, 천리휴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차선 일당」의 비밀을 다한,
토요젠 오구라 번주·호소카와 타다흥후(미사이).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에노 야키 사백년의 역사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호소카와 타다흥후는 1602년 존귀를 불러, 도토, 수질이 풍부한 우에노의 땅에 가마를 구축했습니다.
존설은 지명을 따서 우에노 키조고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호소카와 타다흥후의 지도에 의해,
미사이 취향의 격조 높은 차도를 30년간, 헌상해 계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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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주 칠가마 중 하나]

도쿠가와 시대가 되면, 도쿠가와가 다도 지남 역의 대차인·코호리 엔슈가 다기를 만들기 위해서
전국 일곱 곳의 가마를 선정했습니다.
이것이 엔슈 나나 가마입니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따뜻함을 가진 우에노야키는 당시의 다인에게 매우 선호되었다고 합니다.

<원주 칠가마>

  • 시토로야키(토에:엔슈)

  • 도소야키(오미)

  • 아사히야키(산성)

  • 붉은 매운 야키 (야마토)

  • 후소베 구이(섭진)

  • 우에노야키(토요젠)

  • 타카토리야키(치쿠마에)

徳川時代から伝わる陶器

[불타는 가마의 불꽃]

메이지 시대, 폐번치현에 의해 토요젠 오구라번이 없어진 후, 우에노야키는 한때 끊어져 버린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메이지 35년에 타가와군의 보조를 받아 재흥되었습니다.
시대 배경에 따라 그 정취를 바꾸어 격조 높은 세련된 형태를 지금에 남기는 우에노야키.
쇼와 58년에는 나라의 전통적 공예품의 지정을 받았습니다.
사백년의 전통과 역사 속에서 현대의 감각을 받아들여 세련되고 우아한 작품에 수많은 특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上野焼 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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