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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野焼(あがのやき)
우에노야키의 역사
[우에노야키의 걸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분록·게이쵸의 역」에 의해 초청되어 가토 기요마사 공에 따라 귀화한, 이조 도공·존중.
그리고, 서국 다이묘 중(안)에서도 다도에 조예가 깊고, 천리휴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차선 일당」의 비밀을 다한,
토요젠 오구라 번주·호소카와 타다흥후(미사이).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에노 야키 사백년의 역사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호소카와 타다흥후는 1602년 존귀를 불러, 도토, 수질이 풍부한 우에노의 땅에 가마를 구축했습니다.
존설은 지명을 따서 우에노 키조고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호소카와 타다흥후의 지도에 의해,
미사이 취향의 격조 높은 차도를 30년간, 헌상해 계속했습니다.

[상원주 칠가마 중 하나]
도쿠가와 시대가 되면, 도쿠가와가 다도 지남 역의 대차인·코호리 엔슈가 다기를 만들기 위해서